철도나 도로같은 대형 공사업체는 전문 기술인력을 보유해야 입찰을 따 낼수 있습니다.
하지만 실태를 취재해 보니 자격증만 빌려주는 일이 잦았습니다.
수십년 전에 은퇴한 80대, 90대 인물들도 '자격증을 갖춘 인력'으로 포장돼 있었습니다.
김유림 기자의 더깊은 뉴스입니다.
[리포트]
열차사고는 대형인명 피해로 연결되기 쉬운 만큼 면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.
철도 공사 업체를 선정할 때 관련 기술자 보유 여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.
입찰업체는 특급, 고급 기술자를 고용하지 않고는 공사를 따낼 수 없습니다.
하지만 "상당수 기술자들이 업체에 실제 근무하지 않고 자격증만 빌려주고 있다"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.
[A씨 / 철도 공사 업체 대표]
"(자격증을) 대여를 하게 되죠, 대여를. 특급, 고급자격증을 대여해서 입찰을 보죠. 현 상태가 그래요.
(등록 기술자 10명이라면 중 몇 명이 대여자인가요?)
70%는 대여자라고 봐요.
(회사에 전혀 안 나오는 거죠?)
그렇다고 봐야죠. 한 달에 뭐 한 번 놀러 겸사 오거나."
한 중견철도회사가 입찰당시 근무자로 명시한 특급기술자를 추적해 봤습니다.
B씨는 80대 중반입니다. 월요일 오후지만 B씨는 출근하지 않았습니다.
[B씨 / 00전기회사 소속 기술자]
(지금도 00전기회사 나가세요?) 나가지요. (매일매일 나가세요?) 왜 물어봐요? 오늘은 안 나갔어.
다음 날 본사를 찾아갔지만 B씨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.
[00전기회사 본사]
"(B씨 계시는지?) 안 계세요, 지금. 여기는 출근 안 하세요."
서울 사무소에도 가봤지만 B씨는 물론이고 다른 기술자들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.
[00전기회사 서울사무소]
"(B씨 근무하세요?) 네 근무하시는데요. 오늘 안 계세요. 현장에 다 있죠."
1930년대 생인 B씨가 실제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는지 거듭 묻자 업체는 경찰에 신고까지 하며 취재진을 내쫓습니다.
[00전기회사 서울사무소]
"(B씨가 1930년대 생 인데?) 그 개인정보 어떻게 아셨어요?
(실제 근무 안 하는데 등록하신 거 아니에요?) 취재 안 할 거예요.
취재진이 확보한 철도 신호 건설 업체 소속 기술자 명단입니다.
올해 80대인 1930년대 생 20여 명이 기술자로서 업체에 등록돼있고 심지어 아흔을 넘긴 1928, 1929년생 철도 전문가도 3명이나 됩니다.
이들 중 상당수는 철도청이나 지하철 관련 공기업 임원 출신 '전관'으로 확인됐습니다.
[C씨 / 철도 업계 관계자]
"재택근무를 시키고 자격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. 나이 들어가지고 현장에 나가기는 싫고 나갈 상황은 안 되고. 자격을 갖고 있으니까 인정을 해줄 수밖에 없잖아요."
취재진은 특급 기술자를 가장해 업체와 접촉했습니다.
[녹취]
"(안녕하세요. 저 철도 신호 자격증 모집 공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. 출근은 전혀 안 해도 되는 건가요?)
비상주라는 건 출근 안 하시고 자격증만 저희한테 맡겨주시면 되는 거예요. 현장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."
자격증 대여 대가로 제시한 건 1년에 1천만 원. 4대 보험까지 가입해준다고 유혹합니다.
[녹취]
"1년에 2, 4분기로 6개월마다 한 번씩 500만 원씩 지급하는 조건입니다. (자격증 대여랑 마찬가진데 법적 문제는 없나요?)
걸려도 상관없습니다. 집에 쉬시면서 기본급을 지급할 수 있잖아요. 문제가 되거나 불법은 아니에요."
국가기술자격증을 타인에게 대여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합니다.
한국철도시설공단은 자격증 대여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며, 자격증 대여 의혹이 사실이라면 기존 입찰 취소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.
실제 공사 현장에는 가지도 않은 채 '자격증 대여'만 하는 유령 기술자들.
결국 위협 받는 건 시민들의 안전입니다.
채널A뉴스 김유림입니다.
rim@donga.com
연출 이민경
구성 고정화 이소희
그래픽 전유근